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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Hi! ZACK. (13)


Hi! ZACK.
생활 | 2006/07/05 18:33
2006/07/05 18:33 2006/07/05 18:33
                                <하이-자크 (HI-ZACK) - 양산형 모델>

  여기 자크(HI-ZACK)가 있다. 2004년에 <용산 스페이스9>의 프라모델 가게에 갔다가 이 친구를 봤다. 왠지 친숙하다 싶었는데 초등학생 시절 조립했던 프라모델 <자크 탱크 (ZACK TANK)>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크 탱크는 아카데미社 제품이었는데 상반신은 자크였고 하반신은 탱크였다. 특징적인 건 손이었다. 보통 자크는 사람 손처럼 손가락이 다섯 개 모두 있는 게 아니었다. 상하로 움직이는 집게 모양의 손가락 세 개가 전부였다. 방아쇠를 당길 수 없는 손가락의 모양으로 봐서 자크 탱크는 전투용이라기 보다 작업용 메카닉일 거란 생각을 했다.
  기억을 되짚다가 혹시 자료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자크 탱크를 검색해봤다. 건담 메카닉 자료실에는 자크 탱크가 아닌 자쿠 탱크(Zaku Tank)가 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에선 자크 탱크라고도 불리우고 있었다. 나도 그냥 자크 탱크라고 부르련다.


  이게 바로 자쿠 탱크(Zaku Tank)다. <건담 08소대>에 등장한 건설용 모빌 슈츠인데, 내가 조립했던 모습가 너무 달라 실망했다. 한쪽 팔뚝에 '현대 중공업'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메카닉이다. 내가 대략 20년 전 만들었던 자크 탱크는 이런 뭉툭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하긴 용도에 따라 다양한 모델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 자쿠 탱크의 투박한 모습에 성을 낼 일은 아니다.

  프라모델의 제품 완성도가 높았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라 섬세한 부품을 정교하게 조립할 수 있었기에, 나의 자크 탱크는 초등학교 시절 조립한 프라모델 중 가장 ...... 예술적이었다.


  내가 자크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 건 어린 시절의 프라모델 조립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자크의 매력은 메카닉의 디자인에 있다.

  바지 단추 하나에서 고층 건물까지, 매력적인 디자인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려 애쓴다. 특이한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지만, 그 특이성이 과하게 드러날 경우 보는 이들은 일종의 스트레스를 느낀다. 파괴와 일탈의 미학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디자인들은 절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다. 자크의 디자인은 이 미덕을 잘 살렸다.
  건담 시리즈가 하도 많아서 건담의 디자인만 해도 내가 아는 것만 서너 가지가 되니, 건담과 자크들의 디자인 컨셉트를 하나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하이-자크(HI-ZACK)를 기준으로 보면, 이 메카닉의 디자인은 충분히 절제되어 있다.
  걷고, 달리고, 잡고, 휘두르고, 찌르고 막는 동작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만 남겼다. 어깨 장식의 뿔들은 좀 어색하지만, 대체로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을 모델로 한 것이니만큼 이런 간결함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결하면서 필요한 요소를 다 갖춘 메카닉 디자인. 이게 자크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건담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건담과 자크의 메카닉 디자인의 특징적인 차이는 어깨 장식과 머리 부분 정도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건담보다 자크가 좋다. 자크의 머리와 몸에 달려 있는 튜브들이 주는 상상들 때문이다.
  하이-자크에서도 노란색의 튜브들이 몸 구석구석에 달려 있다. 난 이것들이 왠지 스쿠버 다이빙 장비 같아 보인다. 물과 우주가 닮았고, 다이빙 장비와 자크의 메카닉이 닮았다. 자크의 몸에 달린 튜브들은 핏줄, 기도, 분비선, 신경 같은 생체 기관의 은유다. 이 은유가 메카닉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금속의 메카닉이 사람처럼 숨을 쉴 것 같다. 가면을 쓴 것 같은 건담은 어차피 기계일 뿐이다. 진짜 금속 생명체는 자크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왜 지휘관용 빨간 자크가 아닌 양산형 자크를 좋아하는지를 얘기해야겠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프라모델을 통해 처음 건담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면 어린 시절부터 자크보다 건담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건담 시리즈의 주인공은 건담이니까.
  주인공이 아닌데도 자크를 좋아하게 된 건 대학교 때 동아리방에서 친구들이 보던 건담 애니메이션을 조금씩 보게 된 것 때문이기도 하다.
  <건담 08 소대>였나? 머리가 커서 본 건담 애니메이션에서 자크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다. 자크들은 가지런히 서서 무수한 미사일과 레이져빔을 발사하지만, 건담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그 많던 자크들이 펑펑 터져 나간다.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자크들이 파괴되는 장면은 재활용 되어 자크 파괴 장면마다 되풀이 됐다. 개성 없는 자크들을 매 번 따로 묘사하기엔 제작비가 좀 모자랐나 보다.

  건담 시리즈의 방대함에 기가 질려 시작도 못 해본 터라 잠깐씩 본 건담 시리즈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자크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총, 방패, 어깨 장갑, 흉부 장갑 등 공격과 방어 무기를 두루 갖춘 자크의 모습은 노트북, PDA, 명함집, 서류가방, 사무적이면서도 호감 가는 말투 등으로 무장한 내 모습과 겹쳐졌다. 자크 양산형 모델은 양산형 학생, 양산형 회사원, 양산형 사회인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겉보기엔 건담과 비슷해 보여도 양산형 자크는 건담과 달리 총알받이 역할을 한다.

  나도 총알받이였다.

  자크를 다시 한 번 보시라. 이게 어디 총알받이 하게 생겨먹었는가. 그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하나 하나 뜯어보면 얼마나 멋있는지. 나는 이 친구의 비극적인 최후를 인정할 수 없다.
  임무를 완수한 자크와 실패한 자크, 파괴된 자크와 살아남은 자크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상반신만 재활용되어 자크 탱크가 되건, 아예 고철이 되건, 그건 정말 중요한 게 아니다. 자크는 그 자체로 멋있다.

  금속 생명 자크는 진정한 우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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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둥이에게 선물 받은 하이-자크를 오늘에야 다 조립했다. 2년 전에 몸통만 만들고 손을 땠었는데, 자크 상자를 볼 때마다 부담이 됐다. 이제 가슴 속 돌맹이 하나를 치웠다.
■ 조립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몸통을 끝으로 2년 동안 손을 못 댄 건 한 번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두 시간 씩은 들여야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기 때문이었다. 팔 한 쪽에 30분, 다리 한 쪽에 30~40분 씩 걸렸다. 프라모델 전용 니퍼로 뜯어낸 부품의 니퍼 자국을 고운 사포로 일일이 갈아 주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 자크가 전투용으로 디자인 되었다는 건 좀 슬프다. 자크가 아무리 보기 좋아도 전쟁 기계라는 생각을 하면 정이 떨어진다.

♥ 한동안 내 책상 한켠에 자크가 서 있을 거다. 망구가 선물에 준 <스틱파스>와 정선수가 둥이에게 선물해 준 <팔베게 하며 누워 있는 개구리 조각>이 내 책상을 지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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