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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에 해당하는 글1 개 |
2007/10/05 경복궁 나들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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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나들이
생활/가다 |
2007/10/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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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 대입원서를 대신 접수하고 컴퓨터를 고친다며 종로구 신교동에 있는 이모 댁으로 간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모 댁에서 멀지 않은 경복궁에 놀러 가기로 했다. 몇 가지 할 일들을 착착 처리한다. 2시에 경복궁 구경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집에서 늦게 출발한데다 할 일이 많아져서 4시로 계획을 늦췄다. 더 늦었다간 오늘 경복궁 구경은 다 한 거다.
대입원서는 우편으로 별 탈 없이 접수했지만, 컴퓨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소프트웨어 문제가 아닌 하드웨어 문제라서 당장은 어쩔 수 없다. 할 수 없이 응급처치만 하고 이모 댁을 나서는데, 뭔가 흘리고 온 것처럼 기분이 찜찜하다. 오늘따라 날씨가 후텁지근하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모를 뿌연 것들에 둘러싸여 걷다보니 숨이 턱턱 막힌다. 괜히 내 옆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이 미워진다. 양말이 땀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 해 발가락 사이가 미끄럽다. 오래 걸어야 할 땐 좋은 양말을 신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 정말 걷기가 싫다.
싫어하는 건 왜 항상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힘겹게 걷다보니 ‘걷기’를 생각하게 된다.
걷기는 가장 기본적인 이동방법이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 않은 이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동하기 위해 걷는다. 자가용을 타고 집에 와도 주차장에서 잠자리까지는 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걸으면서도 걷는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그저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과 같다. 자기의 걸음을 느끼는 순간은 걷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걷기가 힘들 때 찾아온다. 나도 무더운 초가을 오후에 차가 많은 아스팔트 도로 옆의 보도를 10분 넘게 걸으면서야 비로소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걷기를 생각하다 내 몸의 움직임을 생각한다. 오른발 뒤꿈치부터 앞으로 내딛고 엄지발가락 쪽으로 몸의 중심을 움직인다. 엄지발가락이 구부러지며 힘이 조금 들어간다. 엄지발가락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왼발의 뒤꿈치는 땅을 딛는다. 그러는동안 내 두 팔은 앞뒤로 천천히 움직인다. 골반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눈은 끊임없이 주위를 살핀다. 허리 근육이 움직인다. 땀이 나는 것 같다. 피부가 옷에 쓸리고 있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간지른다. 지금 내 몸은 움직이고 있다.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 왜 몸이 힘든지 생각한다. 다리와 허리의 미세한 통증 때문인가? 습한 날씨에 체온까지 올라가서 불쾌해진 걸까? 그냥 힘들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참기 어려웠지만, 몸의 기관 하나하나의 불편함을 떠올리며 그 고통의 크기를 생각하니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몸의 곳곳에서 생기는 고통은 지금의 행동의 부적절함을 알리는 신호로 작용하는 것 같다.
갑자기 삼국지에서 관우가 독이 묻은 화살에 맞아 한쪽 팔의 뼈를 긁어내는 수술하면서도 바둑을 뒀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지금까지는 관우가 바둑에 집중하고 제 상처의 아픔에는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 살이 찢기고 뼈가 긁히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낸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장부의 기개로 상상을 초월하지는 못한 아픔을 눌렀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몸의 고통을 찬찬히 관찰하다보니, 어쩌면 관우는 자기 몸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관우는 신체의 아픔과 그 아픔에서 나온 공포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픔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공포는 극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공포를 극복하면 바둑을 둘 수 있을 만큼 정신을 챙길 수 있을 거다. 아픔이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지만, 아픔이 낳은 공포가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
고통을 직접 마주하면 아픔은 아픔으로만 남고 몸 전체가 위험하다는 신호가 되지 않아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플 때 눈물이 나고 비명을 지르게 되는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뇌를 자극해 연관된 기관의 반응을 일으킬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신체가 훼손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공포만 떨쳐내게 된다면 고통에 태연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약간의 신음과 눈물과 경련 정도만 감수한다면 외과 수술 중에도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으려나? 물론 그렇게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거다. 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보는 주제에 몸에 칼을 대는 공포를 참아낼 거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다. 관우의 ‘외과 수술 중 바둑’ 일화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걷기와 몸과 고통을 생각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래간만이다. 좋은 기분이다. 왠지 힘이 솟는다. 생명은 고통 속에서 더 뚜렷이 느껴진다. 게다가 고통을 생명에서 떼어둘 수도 없다. 고통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다가는 문제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냥 안고 가자.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다. 고통 속에서 삶을 생각하다니, 이게 고통의 순기능일까? 걸으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이제 경복궁이다. 정문이 아닌 서문으로 들어간다. 2005년의 경복궁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지 날리는 광장에 군복무를 대신하고 있는 재현배우들의 피곤한 공연이 이어진다. 음향을 조정하는 천막에는 각종 음향기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07년의 군인들이 수백년 전의 군인들을 연기한다. 군인들의 눈에 피로가 뭍어 있다. 화장을 하고 수염을 붙인 군인들이 통풍이 잘 안 될 것 같은 옷을 입고 지나간다. 그 뒤로 또다른 군인들이 행사 소품들을 정리한다. 이쯤 되면 조선시대의 풍경은 간 데 없다. 군복무의 현장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궁의 기와지붕을 보면 옛 왕국의 추억을 찾을 수 있다.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있는 곳이다.
경복궁은 총력개발시대를 거친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과거의 기억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곳이며 그 상징성도 크다. 왕정의 추억은 현재의 민주정 속에서 화석이 된 것 같지만, 그냥 죽어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제라 더 그런 것 같다. 청와대의 위치나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은 아직도 우리 제도 속에 왕정의 기억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도 이제 경복궁은 왕이 정사를 돌보던 곳이 아니다. 관광객들은 한적한 궁의 곳곳을 돌아다닌다.
광광지에서 옛 사람들의 자리를 살펴본다. 정 9품도 먼 발치에서나마 왕을 알현할 수 있었겠구나.
이제 본격적으로 구경하자! 둥이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간다.
느즈막이 찾아간지라 구경할 시간이 별로 없다. 관람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어 참 좋다.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태양이 뿌리는 빛은 경복궁을 비스듬히 비춘다. 조금 누런 빛은 원래 그런 것인지 먼지 때문에 그런 것인지 부드럽고 따뜻하다.
화단에 민들레가 있다. 민들레 홀씨들이 비행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긴장감을 느낀다. 모체를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홀씨들은 별에서 떨어져 나갈 운석 같다. 부디 좋은 땅에 뿌리 내려 잘 커라.
아무래도 난 나무를 참 좋아하나보다. 한참을 나무만 보고 있다.
친구 망고도 같이 왔다. 사실 오늘 경복궁 나들이의 진짜 이름은 ‘경복궁 출사’다. 망고는 사진을 좋아한다. 사진과 글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열심히 공부해서 꼭 원하는 바를 이루길 빈다.
경복궁 옆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다. 다층 누각의 모습은 볼 때마다 생경하다. 민속박물관이라지만, 경복궁과 다를 바 없는 풍경 속에 묻혀 있다. 다만 기묘한 표정의 조상(彫像)들이 민속과 관련된 장소라는 것을 알려준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덕에 길지 않은 시간동안이나마 박물관 진입로에 서 있는 다양한 조상(彫像)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안내판 옆에 서 있는 조상(彫像)의 웃음의 이유가 원래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지금은 부지런한 웃음을 띈 서어비스 맨이다.)
모두들 특별한 주술이 깃든 조상(彫像)들이었을 것이다. 원래 자리 잡고 있던 곳에서 뽑혀와 이곳에 서 있는 조상(彫像)들. 이제 그들이 만들어진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는 묘한 장식물이 되었다. 맥락 없이 이어지는 단어와 문장들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듯, 이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잃었다. 남은 건, 옛 명성 뿐. 남은 건, 이들의 그림자처럼 불분명한 이미지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의 실체를 눈과 손으로 확인하면서 옛 주술의 마당에 한쪽 발을 걸치는 것밖에 없다. 이마저도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흘렀다. 사람이 변했다. 이제 이 조상(彫像)들이 옛 자리에 버티고 서 있다고 한들 이들이 속한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여기 한 데 모여 있다고 해서 이들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어려울 건 없겠다. 이들이 주술의 문이라면 이들과 함께 그 세계를 여행하는 데에는 더 필요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높이 솟아 서울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남산타워나 온갖 색으로 치장한 한강의 다리들은 돌하르방과 장승을 대신하는 현대판 주술의 문이다. 장승과 돌하르방이 옛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듯, 서울 사람의 가슴에는 63빌딩과 남산타워가 버티고 서 있다. 이제는 63빌딩이니 남산타워니 하는 것들도 옛 것이 되어버렸나? 지금은 뭘까? 청계천일까? 곳곳에 흩어져있는 금융기관 지점들일까? 대형종합병원들일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달라졌다. 달라진 바람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 조상(彫像)들과 새로이 생겨난 조상(彫像)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경복궁 나들이의 즐거움 중 하나다.
경복궁과 민속박물관. 옛 것들을 한 곳에 모아둔 이곳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현재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향한 관점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는 어떤가? 아쉬움과 불안함이 켜켜이 쌓여있지만, 나는 웃을 수 있다. 이게 내 현재다.
내 현재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조상(彫像)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돌하르방에게 감사한다. 그는 내가 그들을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줬다. 잠깐동안 고향으로 데려가 주었다. 외롭고 쓸쓸히 타향살이를 할 지 모르겠으나, 옛 말에도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온다고 했다. 사람 모양을 했으니 서울에 왔다고 불평만 할 건 아니다. 게다가 옛 왕궁 담장 안에 기거하고 있지 않은가!
경복궁을 나선다. 몇 년 전에 친구 윤래와 같이 왔었던 경복궁을 다시 나선다. 이제 윤래는 경복궁 근처에서 일을 한다. 그녀의 남편 망고와 둥이와 나는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그녀의 퇴근을 기다린다. 예전에 윤래와 둥이와 내가 창덕궁의 등용문 앞에서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 이제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두와 칼국수로 저녁식사를 한다. 만두가 참 맛있구나. 나의 현재는 ‘웃을 만두’ 하구나! 나의 현재는 참으로 좋구나! |
또니
2007/10/05 18:55
2007/10/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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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mith 26 wesson 686. 2011/04/15 15:56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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