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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되는 선수들 1,2,3,······
주장/스포츠 | 2006/04/21 09:00
2006/04/21 09:00 2006/04/21 09:00
(1) 박충식
  10 여년전 한국시리즈 해태와 삼성의 경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성의 언더핸드 투수 박충식 선수는 영웅이었다. 절정기는 지났다고 했지만 여전히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 선수와 대결해서 막상막하의 경기를 이끌었다. 삼성과 해태의 타선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두 투수는 상대팀 타자들을 완전히 눌렀다. 승부는 9회에서 끝나지 않았다.
  연장전에 들어가며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투구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삼성의 박충식 선수는 꿋꿋히 공을 뿌렸다. 삼성에는 박충식 선수를 대체할 만한 투수가 없었다. 그의 투구수는 점점 늘어갔다.

  경기의 승패는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건 박충식 선수의 몸놀림이다. 부러질 듯 휘는 허리, 묘한 각도에서 꺾여 돌아가는 팔, 잔뜩 힘이 들어간 목줄기, 꽉 다문 어금니. 슬로우모션으로 재현되는 그의 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해태빙과 대리점집 친구가 준 김봉연 선수와 김성한 선수의 책받침 때문에 시작한 10 년 넘은 해태팬이었지만, 해태보다 삼성이 더 강렬해 보였다. 멋있었다. 신기했다.
  나에게 그 경기는 삼성이 이긴 경기였다. 박충식이 이긴 경기였다. 박충식의 야구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울마다 9시 뉴스에 나왔던 야구선수들의 얼음장 목욕이 선수생명을 단축시킨다며 없어진 즈음이었나. 박충식 선수가 예전 그 경기,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부상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장까지 공을 던지며 혹사한 그의 어깨는 탈구 직전이었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몸이 단련된다. 하지만, 한 번 다친 몸은 그 사고를 기억한다. 친구 망고는 농구 하다 걸핏하면 발목을 삐었고, 나는 (겨우, 그까짓-_-;) 베드민턴 치다 허리를 다쳐 입원한 적이 있다. 의사들은 한 번 끊어진 발목 인대는 좀처럼 다시 붙지 않고, 크게 삐끗한 적 있는 허리 근육은 완치되기 힘들다고 했다. 탈구 직전까지 갔던 박충식의 어깨도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후 또 던져야 했을테니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게 현실적 기도였을 거다.

  또 언제였을까. 박충식 선수가 뻣뻣한 자세로 공을 던지는 걸 봤다. 해설자는 그의 자세를 보며 허리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허리를 제대로 못 써서 구위가 나빠졌다고 했다. 그러다 박충식 선수는 잊혀져 갔다.
  무리한 선수 운용으로 비난받았던 삼성 라이온즈와 감독의 행태도 잊혀져 갔다.


(2) 정일영
  지난 18일 광주진흥고 정일영 선수가 삼진을 23 개나 잡았다.  총 16 이닝 중 13과 ⅔ 이닝을 던졌고 7과 ⅔ 이닝을 삼진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12회 연장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이틀에 걸쳐 대결한 경기였다지만, 이틀 동안 242개의 공을 던진 건 분명한 선수 혹사다. 학대다.
  그래도 잊혀질 것이다. 박충식 선수가 잊혀졌듯이.


(3,······) 비슷한 사례들
  - 박지성 자서전에 실린 히딩크가 박지성에게 보낸 감사 편지에서...
  무릎 통증이 있었지만, 코칭스텦과 의료진에 얘기도 하지 않은 채로 경기를 뛴 박지성에게 감사하다는 말이있다. 그렇게 열심히 뛴 덕분에 지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 연예인이 된 강병규가 쇼프로그램에서 한 말...
  고교시절에는 야구관계자들 눈에 띄려고 죽을 각오로 던졌다고 했다. 덕분에 고교졸업 후 OB베어스에 입단했다.

  -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경기 중 다친 등의 통증을 참아내며 감독에게 한 말...
    (픽션이지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백호는 지금 이 순간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가 운동을 하는 이유가 되는 순간이라는 말을 했다.

  선수들은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한다. 프로니까, 지금은 아마츄어지만 프로가 돼야 하니까. 성적이 좋아야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수 있다.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어찌보면 선수들의 혹사가 비단 성적에 목 매는 감독과 학교와 부모님과 구단주의 의지 때문만은아닐 것이다.
  그래도, 감독과 팀의 역할은 폭주하는 선수를 진정시키는 거다. 선수가 고통을 기꺼이 참아낸다고는 하나 그 고통을 줄이는노력을 하는 게 팀의 의무다. 팀을 위해서 개인의 비정상적인 고통을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선수 생명이 짧아질 게 뻔한데 경기를 뛰게 하는 건 감독이 할 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박충식, 정영일 선수처럼 무리하면 선수는 물론,  팀과 한국 야구 모두에 손해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당연히 인기가 있다. 인기 없는 종목은 프로화 되지도 않지만.
  경기 자체는 재미있지만, 격투기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일상의 압박과 무료함을 달래려 스포츠를 다지만,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이 그대로 보일 때가 많다. 혹사되는 선수들이 회사에서 야근하던 나를 닮았고, 인간적이라지만 무리한 선수 운용을 하는 감독들을 볼 때면 운동권 출신의 옛 회사 CEO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소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광과 자아실현을 위해 찬연히 타오르는 것과 목표 달성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는 걸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불쏘시개라도 되지 않으면 살기 힘든 현실에 책임을 넘기는 게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 어려운 현실 속에서의 비정한 역할을 쉽게 내면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소모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방법은 나도 모른다. 찾는 중이다.


  기아의 스카우터 강태원 씨가 정일영 선수의 경기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던지고 나면 반드시 어깨와 팔꿈치에 후유증이 따른다”, “기아가 1차 지명한다면 메디컬 테스트를 받게하겠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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