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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잡고 노트에
생활 | 2006/03/09 19:57
2006/03/09 19:57 2006/03/0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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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봄에 싸이질을 재시도했다. 수 년간 MSN메신저와 싸이는 정말 적응이 안 됐다. 결국 몇 개월간의 싸이 생활도 흐지부지 됐다. 가끔 로그인 해서 1촌 등록된 친구들 싸이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글 쓸 데가 없더라. 처음엔 '한글'로 써서 노트북에 저장했는데, 뭐랄까 정서에 맞지 않더군. 글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노트에 글쓰기다.

  온라인에 직접, 혹은 워드프로세서로 써 저장하는 방식의 디지털 글쓰기는 편하다. 정말 편하지. 속도는 물론이고, 편집의 자유로움은 손글쓰기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말이지... 내가 익숙한 줄 알았던 디지털 글쓰기도 불편하더라. 일종의 자동기술법 처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풀려나오더군. 편집하는 시간이 길기도 하지만,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천천히 쓸 수도 있겠지만, 습관이 잘 못 든 것 같기도 하고.

  반면 손글씨를 쓰다보면 차분히 생각하고 쓰게 된다. 편집의 불편함 때문에라도 미리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차분한 생각 끝에 차분한 글이 나왔고.
  그 뿐만 아니다. 글씨를 쓰다가 모양이 좋아질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았고, 사그락 거리는 펜과 종이의 느낌도 묘하게 좋다. 그림도 맘대로 그릴 수 있고, 쉽게 쓰기 시작할 수 있다. 부팅이 필요한 노트는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건데... 또 친구 망고랑 얘기한 건데... 우리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지닌 것 같다. 어떤 과학자의 미래 예측에는 디스플레이를 통한 가상공간에 익숙해진 상태로 몇 세대만 지나도 지금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성향의 인류가 될 거라고 했다. 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있다. 망고도 연필을 쓰고 있다.

  디지털.. 신기술.. 무리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손글씨쓰기의 이유로는 그 묘한 손맛으로도 충분하다. 왜 요즘에도 만년필들이 팔리는지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난 지금 행복하다. 비록 디지털 글쓰기를 하는 중이지만, 이게 싫은 건 아니다. 쫀득한 키보드의 느낌이 좋다. 각자 다른 맛이 있으니까 골라 먹는 거다. 맛있다.
 
<첫번째 노트는 제주도 집에 놓고 왔고, 사진에 있는 노트는 두번째다. <호텔 아프리카> 애장본 4권에 껴 있는 얇은노트다. 떡제본 노트라 쓰기 불편할 때가 있다. 양장이나 실제본이라면 편하겠지만, 사은품에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 돼지.^^; 지금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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