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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의 밤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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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과 시멘트의 부동산 위에 전깃불만 빛난다.
어두운 밤 전깃불은 되려 달의 축복을 감추고
사람들은 달빛을 살해한 전깃불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밤이 길다.
그래도 시멘트 덩어리 틈으로 달을 찾는다. 전깃불에 눈이 멀 지경이지만 달빛은 기어이 내 망막에 내려왔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달빛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달을 먹는 순간, 나는 늑대가 되어야만 한다.
철근콘크리트의 안락함을 맛본 나는 달빛에 취하기가 두렵다.
나는 언제 진짜 늑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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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곱창 먹으러 의정부 간다.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2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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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에서 의정부. 참 먼 거리다. 두 어 달에 한 번씩 그 먼 곳을 곱창 먹겠다고 갔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곧잘 탈이 나곤 했는데, 의정부 곱창집의 곱창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다. 신선하고 잘 손질돼서 맛있는데다 값도 싸다. 매콤 달큼 상큼한 야채무침은 반찬이라기보다 메인요리에 가까울 정도로 비중 있는 메뉴다. 기껏해야 곱창구이에 야채무침이지만, 일단 차려지면 그 두 요리 먹느라 정신이 없다. 몇 번씩이나 '어쩌면 이렇게 맛있을까!',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먹었더랬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다. 이제 못 먹을 음식들이 줄을 섰다. 곱창은 대표적인 위험음식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금지되거나 안정성이 제대로 확인될 때까지 먹을 수 없다. 내일 곱창투어도 일단 곱창과의 이별여행이 될 거다.
한우만 쓴다는 의정부 곱창집. 호주산 곱창이 그렇게 신선할 리 없다. 그래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는 싫다. 괜히 찜찜한 마음으로 먹기 싫다. 조류독감이 돌 때는 양계농가 생각에 일부러 통닭을 시켜먹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익혀 먹는다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원산지를 속이는 외식업계의 관행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알고도 먹었다.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을 때,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뭐 죽기야 하겠어?'
그런데 이제 곱창을 앞에 두고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너무 이기적인 건가? 한우농가가 어려운데, 쇠고기 관련 외식업계가 힘들어 하는데, 곱창을 끊어버리면 되나? 같이 살아가야하는 세상. 나 혼자 살겠다고 피하는 건 도리가 아닌건 아닐까?
정말 어쩌냐. 먹으면 찜찜하고, 안 먹으면 미안하다.
정말 이럴 땐 나도 버시바우한테 과학 과외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요 얼마 전에 본, 인터넷 신문기사 댓글 하나가 생각난다.
'형, 난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정말 꿈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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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협상 채점표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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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점요인>
1. 주제 파악 실패 (-70점 감점)
- 협상 결과 확보했다는 30개월 이상 수입금지조치는 핵심이 아님. 광우병 위험물질 수입금지가 핵심. 이에 대한 문제 간과. (-50점) - 양국 정부간 보장에 대한 내용이 없음. 향후 미 수출업체가 WTO에 제소하면 한국정부는 패소할 가능성이 큼. 그러므로 민간자율규제조치는 미봉책임. 이 문제도 간과. (-20점)
2. 피평가자가 스스로 채점 시도 (-20점 감점)
- 채점자의 권위 무시. (-10점) - 자화자찬. 인격도야 필요. (-10점)
-지금까지의 감점 (-90점)
더 이상의 채점 불필요. 채점 중지.
불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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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이라는 이름이 잊혀져도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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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이다. 사람들이 이한열 영정과 함께 오후 6시 30분에 연대에서 출발해 시청으로 행진한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신촌에서 칼국수로 배를 채운 뒤 연대로 향한다.
6시. 신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쪽 구석에 6월 10일에는 철시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지만, 문 닫은 가게는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 붐비는 학교 앞 건널목에 와서 한숨을 쉰다. 정말이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웃으며 신촌으로 나온다. 둥이가 그런다. "연대 애들, 실망이야." 할 말 없다. 그래도 한 마디 했다. "나도 그랬어."
교문 안쪽 길바닥에는 촛불집회 행사장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나일론 끈이 붙어있다.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학생들과 반대로 우리는 학교로 걸어들어간다. 파도를 헤쳐 나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하얀 나일론 끈은 선명하다.
행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에서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엄숙한 이 곳. 여기가 이한열의 영정이 출발하는 곳이다.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사이로 TV에서 많이 봤던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백기완 씨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유족들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다.
이한열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상징적인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언론매체들의 취재 열기가 대단했지만, 정작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적었다. 힘이 빠진다.
이한열의 이름이 곧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의 얼굴은 영정 사진 속에, 중앙도서관의 대형 걸개 그림 속에, 학생들이 준비한 커다란 천에 단단히 박혀 있지만, 언젠가 잊혀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열사, 민주화, 민주항쟁이란 말들은 해마다 기념일이 되면 주위에 나부끼지만, 그런 말들은 큰 감흥 없이 주고 받는 생일 축하 인사처럼 형식적인 언어로 남아버릴 것 같다. 민주화는 어느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념식이 열리는 장소 옆 학생식당 앞에서 한 학생이 친구 앞에서 짜증을 낸다. 조장이 조모임을 펑크 냈다나. 그래, 조모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라서 민감한 거다. 사람들이 예민해지는 상황은 각 사람의 수보다 다양하다. 예민한 데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 대학생 시절에 운동이라면 농구와 테니스만 했다. 깃발 들고 주먹 쥐고 구호를 외치는 운동하고는 친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졸업한지 한참 지나서 이한열 영정과 행진을 하려는 건 민주주의를 이루고 보호하는 것이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에 예민해졌다.
대학생 시절엔 졸업 이후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죽는 날까지의 내가 살아갈 한국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아직 이민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한열 영정을 따라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후텁지근한 날이다. 매연에 아스팔트 특유의 냄새가 섞인다. 그래도 힘을 내서 걷는다. 국악패가 꽹가리며 장구, 북을 신나게 치고 있다. 같이 신을 내 행진한다.
중앙일보 앞이다. 사람들이 악을 쓰기 시작한다. 방음이 잘 되는 유리창일 테지만, 최선을 다한다. "중앙일보 폐간하라!" 폐간까지 할 필요 있겠냐만 계속 공공성을 포기한다면 이름 정도는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중앙사보>나 <삼성사보>, 혹은 <한나라 관보>는 어떨까.
한참을 걷는데 행인들이 격려한다. 웃으며 손을 흔든다. 급기야 윗옷을 벗고 흔드는 분도 나타났다.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구나. 기분이 좋다. 힘이 난다.
시청 광장이 보이는 곳이다. 21년 전 6월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이구나. 이들은 이한열을 또렷이 기억하겠지. 시청 광장 입구까지는 이한열의 이름이 살아 숨쉰다.
자리에 앉는다. 점점 어두워진다. 이제 이한열은 사라졌다. 주위의 누구도 이한열의 이름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죽어간 젊은이의 이름을 대신해서 촛불이 타오른다. 옛날 제갈공명은 사람의 머리 대신 만두를 제사상에 올렸다. 이제 청년들이 흘렸던 피 대신 촛농이 흐른다.
신분해방을 외쳤던 노비 만적.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전봉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만세 운동에 참여한 죄로 살해된 유관순. 그리고 이한열.
이름은 잊혀져도 정신은 남는다. 우리는 그 이름을 밟고 서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촛농이 피를 완전히 대신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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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서울 한복판은 참 아름다웠다.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0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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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쥐새끼, 쇠고기, 0교시, 조중동, 대운하, 폭력경찰. 물러가라, 때려잡자, 폐간하라.
광장과 도로에는 거친 말들이 쏟아져 흐른다.
그런데, 아름답다.
정치적인 문제로 거리로 뛰쳐나온 마당에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가져서야 되겠나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는다.
촛불집회에 구체적인 행동강령 같은 건 없다. 바위처럼 무거워지지 않아도 되는 집회다. 아침이슬처럼 가볍게 맺혀 있기만 해도 되는 모임이다.
<촛불을 들고 외치며 흘러가는 시민들. 그 속의 언니>
과격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 서울 광장. 이명박 씨 덕분에 좋은 경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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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구국의 알바부대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0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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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을 보면 볼수록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진정한 안티는 청와대 보좌관들과 조중동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우리는 지금 마음을 추스려야만 한다. 북한 괴뢰집단이 우리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빨갱이, 좌빨들은 청와대 보좌진에도 섞여 있다. 국회에 잠입한 김충환, 고승덕이도 빨갱이가 틀림없다. 이런 시국에 시민을 때리고도 안 그랬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이계진 이 넘도 악질이다. 이 넘은 지금 김정일이 한테 포상휴가 받고 평양 만경대에서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숭악한 넘들은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데스크에서도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빨갱이들이 대통령 각하와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아~!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안티들은 한 둘이 아니구나!
눈물이 흐른다. 구국의 알바부대는 다 어디에 있는가!
잠깐... 잠깐만...
머리를 식히고 차분히 생각해보자. 이 모든 사건의 핵심은 혹시...
이명박 대통령 각하? 설마 그 분이 빨갱이?
아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그분의 자신감 있는 말을 들어보라. 청와대에 서식하는 빨갱이들이 작성한 사과문을 건내받았지만, 영리하신 그분은 절대 사과문을 그대로 낭독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절대 사과하지 않으셨다.
대통령 각하는 신념이 강한 분이다. 촛불시위대 따위는 가뿐하게 깔아뭉개 버리는 불도저 같은 분이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리는 저 힘찬 청계천의 전기펌프 같은 분이다. 빨갱이들을 까부수는 물대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보라. 그분의 강한 애국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대통령 각하는 지금 자학개그를 하고 계신 것일 뿐이다. 그 분의 시원한 이마를 보라.각하는 경제가 어려워 울상인 국민들을 위해 친히 마빡이를 선보이고 계신 것이다.
좌빨들은 들어라! 너희들은 이미 졌다! 구국의 알바부대가 진격한다!
각하가 계신 한나라당과 그의 숨은 동지 열린우리당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다. 정규직의 알바화 사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곧 한미 FTA가 채결되어 전 국민의 알바화를 이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바부대를 대표해서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 충성의 서약을 한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각하의 영원한 알바가 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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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야기를 오해하지 말자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0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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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모두에게 세상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 때면 영웅을 찾는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 온갖 어려움이 영웅의 발목을 잡지만, 영웅은 결국 모든 장애물을 걷어낸다. 그리고 뭇 사람들은 영웅의 행동에 열광한다. 세상은 영웅을 행적을 따르는 자들로 넘쳐난다. 다시 난세가 닥치면 인턴 영웅들은 각자 모험의 길을 떠난다.
그래서일까. 세상살이가 힘들어질 때마다 수많은 영웅 후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힘을 과시하곤 한다. 그들의 힘은 놀랍다. 하지만 영웅의 길을 밟는 이들이 모두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영웅 후보들이 자기가 괴물 사냥 원정대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괴물의 하인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대중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진짜 영웅을 죽이기도 한다.
이렇게 영웅을 찬양하다가도 영웅의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세상사에서 반복되는 건, 사람들이 영웅 이야기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은 완벽하지 않다.
힘만 센 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한 헤라클레스도 그런 영웅이다. 그는 12가지 난제를 해결하며 유명해졌다. 그런데 그 온갖 어려운 임무들은 그가 찾아 나선 게 아니었다. 그는 에우뤼스테우스라는 사람의 부하였다. 12가지 임무들은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을 받아 해결한 것들이다. 그는 실수도 많이 저질렀다. 홧김에 친구를 죽이는가 하면 심부름꾼을 바다에 처박아 버리기도 했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그는 고독한 남편이기도 했다.
홍길동은 어떤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만 있었어도 그는 평범한 관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의적이 되어 활빈당을 이끌었지만, 개인적인 울분이 없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게다가 그는 실패했다. 그는 율도국으로 떠난 건 조선 사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좀 더 최근의 영웅, 슈퍼맨 이야기를 보자. 슈퍼맨은 참 성실한 사람(혹은 우주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갖가지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한다. 하지만 놀라울 만큼 힘이 세고, 날 수 있고, 눈에서 뜨겁고 빨간 광선을 쏠 수는 있다는 점을 빼면, 마포구 소방서 소방관의 업무와 다를 게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지구를 깨부수려는 적들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기는 한다. 하지만, 슈퍼맨(1탄)에서 제일 멋진 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열하며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모습이 아닐까. 그때 슈퍼맨의 얼굴은 자신감 넘치는 영웅의 얼굴이 아닌, 평범한 기자 클라크의 얼굴이었다.
세상을 위한 마음이 전혀 없었으랴만, 적어도 위의 세 영웅들은 처음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갔을 뿐이었다. 그들도 어떤 면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웅의 모습은 과장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웅의 행동보다 그의 능력에 관심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영웅적인 행동만 했다고 공인된 영웅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쉽게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영웅의 평범한 모습은 특별한 능력의 그늘로 사라진다. 평범함을 털어낸 영웅은 완벽해진다. 어느새 사람들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의 완벽해진 모습을 찬양한다.
세상을 구한다는 목적을 잊은 채로 세력을 키우는 데만 관심을 가지거나, 자기보다 강한 힘 앞에 쉽게 굴복하는 건 특별한 능력을, 힘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기 때문이다. 힘이 목표가 되면 자기보다 힘이 센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자존심은 약자의 변명으로 매도된다. 그래서 수많은 어중이떠중이 영웅 후보들이 원정대 행렬에서 벗어나 괴물의 수하가 되는 것이다.
힘을 추구하던 자들만 괴물의 하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힘을 포기했던 이들도 쉽게 괴물의 손아귀에 떨어질 수 있다. 그들은 여러모로 완벽한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지, 자기 같이 약한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지도 않으면서 포악한 세상을 한탄하며 영웅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괴물에게 대항하는 게 무서워서 아직 힘이 약한 영웅 후보들을 죽이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영웅 이야기에 대한 오해를 풀자.
영웅 이야기는 단순히 영웅이 힘을 얻는 과정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힘은 수단일 뿐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영웅적인 행동의 의미에 있다. 힘의 크기와 힘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헤라클레스, 홍길동, 슈퍼맨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들의 활동하던 세상에는 언제나 그들만큼 힘이 센 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헤라클레스가 죽인 히드라를 영웅이라 하지 않는다.
영웅은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한다. 홍길동이 율도국으로 도망쳤다고 해서 그의 의로운 활동이 하찮은 도적질과 같아질 수 있겠는가. 만약 슈퍼맨이 적들을 이길 수 없었고 그의 연인을 살릴 수 없었다고 해도 그의 행동은 영웅적이었다. 영웅의 성공은 독자(혹은 청자)를 위한 보너스다. 우리는 영웅의 성공에서 희망을 찾는 노력을 그만둬야 한다. 희망은 영웅의 도전 그 자체에서 발견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선, 성공=선, 실패=악’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공식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2008년 5월과 6월의 사이의 대한민국. 무척 혼란스럽다. 파란 기와집에는 괴물이 산다. 괴물의 동료와 수하들도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일단 영웅이 등장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은 완벽히 갖췄다. 사람들은 영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영웅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미 영웅은 등장했다.
남들에게 거짓말 해 본 사람도,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욕하고 때린 적 있던 사람도, 규모야 어떻든 탈세를 해 본 사람도, 정당한 비판을 도리어 비난했던 사람도, 지난 선거에서 현 대통령을 선택한 사람도 촛불을 들었다. 그야말로 실수투성이, 결함투성이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세상을 구하려는 행동을 하고 있다. 영웅적 행동을 하고 있다.
촛불집회의 정치적인 힘을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이 영웅이 된 것은 힘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다.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각종 모임에서 힘닿는 대로 의미있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첫 날 아침. 시청 광장에 갔다. 만일을 대비해서 신분증은 집에 두고 나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청 광장은 조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초췌한 얼굴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집에서 왔다고 했다. 잘 못 알아들으신다. 다시 묻길래 연남동에서 왔다고 했다. 미안했다. 사람들이 물대포를 맞고 있었던 그 새벽에 나는 연남동에서 편히 자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는다. 새벽녘까지 거리에 있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꾸준히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로 한다. 괴물 원정대에는 바드(bard 음유시인)의 자리도 있다.
시청 광장에 쓰러져 따뜻한 햇살을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힘이 난다. 할 일을 제쳐두고 글과 사진을 올리는 인터넷 활동가들, 블로거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는데, 그 반대도 말이 되는 것 같다. 나쁜 일이 생기는 중에도 좋은 일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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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당이 자유선진당과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국현 씨가 힘만 쫓다가 괴물의 부하가 되버렸던 영웅 후보들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된다. 문국현 씨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야당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절대반지의 유혹에 빠져 인생을 망쳤던 이들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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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제대로 쐈다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6/0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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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려면 물을 써야지. 근데 어쩌냐. 그깟 물로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가슴의 불을 H2O로 끌 수 있을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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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소
주장/정치와 경제 |
2008/05/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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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소통은 사람들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트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지, 이야기는 소통의 대표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런데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에서는 좀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타인의 삶>은 슈타지(Stasi 동독의 비밀경찰)와 감시대상의 기묘한 소통을 보여주는 영화다. 동독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작가 한 사람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한다. 현장을 지휘하는 슈타지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작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슈타지는 작가도 모르게 그를 돕고, 작가의 반정부 활동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야 작가는 자기가 도청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문서보관소에서 이제는 공개문서가 된 도청보고서를 본다. 그 보고서에는 자기를 감시했던 슈타지의 암호명이 적혀 있다. 작가는 자기를 도운 옛 슈타지를 찾아가지만, 먼 발치서 그의 모습만 보고 자동차의 핸들을 돌린다. 얼마 후 작가는 새로운 책을 쓴다. 옛 슈타지는 그 책의 머릿글에서 옛날 자기의 암호명을 발견한다. 그는 자기에게 바친 헌사를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슈타지는 도청 보고서로, 작가는 책으로 서로에게 자기의 뜻을 보낸다. 제대로 얘기 한 번 못해 본 그들이지만, 서로 통했다. 이게 소통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가 따로 있겠는가. 그의 미소가 바로 염화미소다.
국가기관과 국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통한다. 대표적인 소통방법은 역시 말과 글이다. 대변인 논평, 기자회견, 공식 보도자료 배포는 국가기관의 전형적인 의사표현 방법이다. 국민도 각종 모임에서, 인터넷에서 여론을 일으키고 이 국민의 뜻은 언론사의 보도나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국가기관에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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