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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에 해당하는 글4 개
2006/12/10   성당에서 그랑비아까지 (9)
2006/12/09   여행의 맛 (마드리드에서의 첫 날) (8)
2006/12/05   스페인에 오다 (4)
2006/11/29   우리가 스페인으로 간 까닭은. (10)


성당에서 그랑비아까지
스페인 여행 | 2006/12/10 17:14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조금 걸으니 성당이 나온다.

<비 오는 날의 성당> 

미사중이라 구경은 포기했다. 미사중에는 관광을 금지한다는 안내글이 있다. 그래도 들어가 사진 찍는 사람들은 있다. 보기 좋지는 않다. 무신론자의 가슴에도 종교의식에 대한 경외는 아직 남아있는 것인가.



성당 바로 옆이 왕궁이다. 관광지이면서 현재 왕가(王家)가 사용하는 장소다. 스페인은 왕국이기도 하다.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프랑코가 인정해서 지속할 수 있었던 왕가. 일본처럼 이름뿐인 왕가로 알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왕가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동안 스페인의 실질적인 왕이었던 프랑코 장군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해석이 엇갈리려나? 프랑코의 계보를 잇는 이들이 아직 정계에 남아있으려나?

폭력과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접고 관광지로서의 왕궁을 접하자. 오늘은 왕가의 행사도 없는 날이다. 완전한 관광지다.



왕궁. 볼 만 하다. 잘 지어놨다. 많은 방 마다 볼 게 많다.


<사자상> 

해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서 술 한 잔 거하게 한 것 같다. 중앙계단 한 켠에 앉아 있는 사자의 품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 사자를 보니 왕궁이 까다로워보이지 않는다.




<조명들. 크롭, 노이즈 제거 위해 커브 조정> 

난 조명 찍는 걸 좋아한다. 예쁜 조명, 쓸쓸한 조명, 큰 조명, 작은 조명 처럼 조명에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 조명들에는 어떤 이름이 좋을까? <날아라 복주머니>?



<누군가의 흉상> 

사람으로 북적이면서도 소리는 크지 않은 왕궁의 방들. 바닥에는 두꺼운 카페트가 깔려 있고,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춘다. 왕궁의 위엄이 사람들을 누르고 있는 걸까? 어둡다 못해 침침하기까지 한 실내에 오래 있으면 조금 답답하다. 흉상의 머리를 창 쪽으로 한 건 참 잘 한 거다. 차분해 보이는 얼굴이 창밖을 보고 있으니, 내 눈도 천천히 창으로 향한다.

화려한 실내장식보다 한 뼘 햇살이 그리울 때가 있다.



<거울의 방> 
널찍한 방의 벽에는 거울들이 걸려 있다. 어떤 거울들은 높이 달려 있어서 자기를 비춰볼 수도 없다. 자기를 비출 수 없는 거울들로 뭘 비추고 싶었던 걸까?
뭔가를 비추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방에 그만큼 현란한 장식의 큼직한 거울들은 다른 세계로 가는 문 같아 보인다. 세계를 정복하는 걸로 모자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 했던가? 모를 일이다.



  <탁자과 의자>
빽빽히 들어찬 의자들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걸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다. 옆 사람과 어깨를 맞대어 비비적거리며 앉아서 왕과 눈을 마주쳐야 하는 건 고역이었을까 영광이었을까? 행여 여기서 식사라도 하다가는 바로 체하겠다.



<황금빛 왕궁>  

왕궁은 구석구석이 화려하다. 이런 화려한 건축물 앞에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한숨의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다.




왕궁을 나서니 비가 그쳐 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구름은 하얗다. 햇볕은 한여름처럼 내리쬔다. 공기는 상쾌하지만 햇볕은 부담스러울 정도다. 비 오는 날에도 선글라스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우산을 접고 걸으니 몸이 한결 가볍다.

<왕궁, 하늘, 구름. cpl 사용> 


 

<공원의 분수> 





아이들을 만난다. 공원 한가득 아이들의 생기가 넘쳐 흐른다. 잔잔히 흐르지 않고 여기 저기로 경쾌하게 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게 갠 하늘과 잘 어울린다.

한 아이가 사진을 찍어달랜다.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모델> 


자리를 잡고 빵을 먹는데, 서너 명의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깡총깡총 뛴다. 카메라를 들고 찍으려는 사이 아이들은 한 무리가 되어 펄쩍거린다.

<공원의 아이들. 사진을 누르면 커진다.>

정신이 없지만, 기분 좋다. 영양제 한 방 맞은 기분이다. 고맙다 얘들아.




슬슬 걸으니 스페인 광장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주위는 자동차도로다. 광장 옆 건물들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큰 건물들이다. 사람들은 있지만, 마요르 광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람 냄새는 없다. 콘크리트 냄새가 나는 곳이다. 건축양식의 차이인가? 아니면 주변 도로와 건물들의 영향일까? 삶 속에 들어온 공간이라기보다 콘크리트위에 약간의 때를 입힌 섬 같다. 삭막하다. 다른 날도 이럴까?



<돈키호테> 주인공들의 동상이 큼직하게 서 있지만, 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다. 돈키호테 완역본을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동상과 탑에는 별 감흥이 안 생기지만, 말의 눈만큼은 인상적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뭐라고 생각하든 늙은 말은 그저 힘들어할 뿐이다. 인물상은 판타지 속에 있지만, 동물상은 현실 속에 있다. 돌진을 외치는 주인의 명령을 받잡을 수 밖에 없는 말의 피곤한 눈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다.



무심하게 회색빛의 주위를 둘러보며 걷다가 발랄한 색을 찾았다.


<스페인 광장의 낙엽. 수평 보정>   



콘크리트 위에도 비는 내리고 햇볕은 내리쬐고 낙엽이 진다.





그랑비아(Grand Via. 큰 길이라는 뜻) 거리로 간다. 딱히 설명할 것도 없다. 서울의 명동 근처 같다. 곳곳에 설치된 현금인출기들을 보면서 여기가 쇼핑의 거리라는 걸 확인한다.

그랑비아 거리는 그저 숙소로 가는 길일 뿐이다. 식품점이 있는 백화점이 숙소와 가까워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요즘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은 백화점에서 파는 상품들에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백화점으로 향한다. 사람 많은 곳은 서울과 다르지 않다. 길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친근하지는 않다. 명동이 싫으니 그랑비아도 매력적일 수 없다.



금방 하루가 흐른다. 걷다보니 금새 어두워지고, 다시 숙소로 간다. 현관 옆 컴퓨터에 앉아있는 한국사람들이 참 낯설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가 생소하다. 몇 시간이 지났다고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생소했던 것들이 일상같다.



어느새 편안해진 방이다. 안락해진 마드리드다.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신이 나고, 앉아있는 침대는 푹신하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태그 : Spain, 스페인, 스페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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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맛 (마드리드에서의 첫 날)
스페인 여행 | 2006/12/09 16:04

긴장을 했나? 시차적응이 아직 안 된 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어렵지 않다. 민박집은 한국사람들로 북적여 스페인도 한국도 아닌 중간계에 온 기분이 든다. 아침식사가 나오지만, 이런 민박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



일단 배는 채웠지만, 필요한 게 한가지 더 있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에는 지도가 필요하다. 특히 스페인의 구시가처럼 복잡한 곳은 지도를 보면서 다녀야 한다.

가이드북에 딸려 나온 지도가 있지만, 믿을 게 못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현지 지도를 구하기로 했다. 지도는 근처에 있는 마요르 광장(Plaza del Mayor)의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다. 민박집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걸어서 10분도 안 걸린다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다.


<둥이.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컴퓨터로 RPG(Roll Playing Game)를 하다보면 언제나 처음이 잘 안 풀린다. 마을을 찾거나 지도를 얻는 간단한 일도 어렵게 어렵게 풀어나가기 일쑤다. 해내고 나서 돌이켜 생각하면 간단한 과정인데도 그렇게 어려웠던 건,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다.

마요르 광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가까워서 많이 헤메지는 않았다. 방향감각이 엉망인 탓을 하기보다는 익숙치 않아서라는 생각을 하는 게 마음 편하다.

어쨌든, 플레이어(Game Player)는 마요르 광장을 찾아냈다. 광장 안에 들어온 플레이어는 구경에 여념이 없다. 지도는 광장 안에 있을테니 둘러보는 게 먼저다. 여기도 관광지다.


<비 오는 마요르 광장>


광장은 정사각형의 ☐자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조금은 음침하다. 아직 가게를 열기엔 이른 시간이기도 하다.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을 둘러보는데 지도 생각이 난다. 주위를 둘러본다. 관광안내소는 어디 있을까?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쭉 걷는다.

어딘가 있겠지.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있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어디에 있나요?

모른단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이 있다. 관광안내소 같지는 않지만, 공공기관 같다.

영어로 물어본다.

여기가 관광안내소인가요?

되돌아 오는 건 스페인어.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당췌 알 수 없다.

서너 사람한테 물어보다 지쳐 다른 곳으로 간다.



RPG에서도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봐야 소용 없었다. 기껏해야 날씨가 좋다느니,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말이나 듣게 된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쓸만한 얘기를 해 줄 캐릭터는 특별한 장소에 있다. 저기 있다!


기둥 근처에서 담배피는 할아버지가 대답해주신다. 물론 스페인어다. 중요하지 않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 된다.

걱정이다. 위치 몰라 걱정이 아니라 할아버지 폐 상태가 걱정이다. 잔뜩 쉰 목소리로 얘기해주고선 다시 담배를 문다. 얼른 끊으셔야 할텐데.



할아버지가 알려준 곳으로 가 보니, 공사장 한 켠에 관광안내소 문이 있다. 그래! 보물(rare item)은 원래 이런 데에 있는 거야! 이런 게 여행의 맛이야!





마요르 광장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 벌써 출출하다. 왕궁으로 가는 길에 한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토스트에 직접 갈아 만든 오렌지 주스다. 첫 스페인식 식사다. 아주 맛있다. 여행 초반이라 난 열린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모든 걸 대한다. 입맛도... 무척이나 긍정적이다.


주문과 계산은 쉽지 않다. 난 스페인어를 거의 모른다고 할 수 있고, 식당 종업원은 ‘orange juice’를 못 알아듣는다. 그녀와 서로 통하는 단어라고는 ‘coke’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주문을 한다. 해냈다!


계산을 하면서 나는 그녀의 발음을 따라한다. 말을 빨리 배우려면 무조건 따라하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비교적 정확히 발음한다. ‘ocho’, 숫자 8이다. 그런데, 그녀가 내 독백의 의미를 잘 못 받아들였나보다. 다시 계산기를 눌러보고 나한테 액정에 찍힌 숫자를 보여주면서 얘기한다. ‘ocho'. 계산이 확실하단다. 나는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다.



이쯤에서 내 ‘맛’에대한 생각의 변천사를 얘기해야겠다. 지금까지 두 번의 계기를 통해 맛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 번은 논산훈련소에서, 그 다음이 방금 전 얘기한 마드리드의 한 식당에서다.



군대에 가기 전에 한 후배에게 맛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혀의 미각세포와 함께 코의 후각세포로도 맛을 느낀다는 얘기였다. 미각세포가 느끼는 맛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후각세포가 가세하면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때는 그냥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논산훈련소에서는 진지하게 다가왔다.


훈련병 시절이라 더 추웠던 겨울, 막사 앞마당에 줄을 지어 쭈그리고 앉아 교회에 다녀오면 으레껏 먹을 수 있다던 초코파이 하나를 받았다. 그냥 초코파이가 아니었다. 보물같은 초코파이였다.

001번 훈련병은 추위에 곱은 손으로 부시럭거리며 봉지를 뜯고는, 소심하게도 앞니로 살짝 베어 문다. 한 입에 씹어 삼켜버릴 수는 없다. 그건... 죄악이다.

순간 후배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래, 맛은 코로도 느끼는 거야.

숨을 들이킨다. 찬 공기에 초코파이의 감질맛나는 달콤한 초코향이 코에 들어온다.

이거구나!

입을 살짝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니 더 좋다. 입 안에 퍼진 따뜻한 향이 코 속으로 몰려온다. 찐득한 크림과 질퍽해진 초코렛의 조금은 톡 쏘는 향이다. 초코파이는 녹아 온 몸으로 퍼진다.

001번 훈련병은 시린 눈을 감는다.


난 그 날 혀가 아닌 다른 기관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색을 보고 냄새를 맡는다는 얘기를 듣고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마드리드의 한 식당에서 먹은 토스트는 맛에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난... 가슴으로 맛을 느꼈다.


그 식당에서 먹었던 햄치즈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는 그 시간 그 식당에서 그 사람들 사이에서 둥이와 먹었기 때문에 특별했다. 나중에 먹은 1인분에 20~30유로 짜리 식사들만큼이나 맛있었다. 첫 해외여행의 흥분으로 한인민박집을 나오면서부터 내 마음은 비둘기 가슴마냥 부풀었고, 그 식당에서 첫 절정에 달했다.



찬찬히 따져보면, 빵에는 기름이 너무 많았고, 조금 탄 곳도 있었다. 햄은 최상급이 아니었고, 치즈도 약간 느끼했다. 오렌지 주스는 방금 갈아 내온 거라지만, 조금 미지근했다. 유리잔에 담긴 모습도 깔끔하지 않았다. 오렌지 알맹이 몇 개가 잔 안쪽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나는 마드리드의 골목을 누비며 왕궁으로 가고 있다. 속이 허전해서 들어간 어느 작은 식당엔 현지인들이 웃고 먹고 마시며 담배를 핀다. 나는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도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게다가 둥이가 내 앞에 있다. 처음으로 외국의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한다. 그네들 말 한 마디가, 손 동작 하나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둥이와 함께 먹는 토스트가 어찌 맛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슴으로 맛 본 토스트와 주스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맛있게 식사하고나서, 안타깝게도 식당에 지도를 두고 나왔다. 다시 돌아간다. 벌써 치웠나보다. 물어보지만, 알 수 없는 스페인어만 듣다 나온다. 없다는 얘기 같다. 지도하고 인연이 없나보다.

세이브(file saving)도, 로드(file loading)도 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그저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가이드북에 실린 작은 지도를 보기로 한다. 가다보면 관광안내소가 또 나오겠지.

낯선 곳에서 정신을 놓으면 쓴 맛을 볼 수도 있다.


태그 : Spain, 마드리드, 스페인, 스페인 여행, 여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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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오다
스페인 여행 | 2006/12/05 20:39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물처럼 흐른다. 나와 둥이는 그 흐름 속에서 갈 곳을 찾아 걷는다. 입국심사 기다리는 줄이 꽤 길다. 목적지는 멀다. 다리를 바삐 움직인다. 시간에 맞춰 스페인행 비행기를 타는 곳에 왔다.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완전히 낯선 곳이다.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도 찾아볼 수 없다.


스페인행 비행기에 탄다. 어두운 기내에서 스페인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다. 스페인어 같다. 아직 독일 땅에 바퀴를 붙이고 있는 비행기 안은 이미 스페인이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됐다. 짐을 찾고, 우리를 마중나왔을 민박집 아저씨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스페인에 발을 디딘 첫 날 몇 분은 그렇게 끝난다. 아저씨는 금새 우리를 찾아낸다. 민박집 경력 수 년에 자기집에 예약한  여행객 찾는 건 일도 아니란다.


운전하는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아저씨는 참 많이도 알고 있다. 단호한 어조로 얘기를 많이 해 준다.


우리가 묵을 방은 좋다 싫다 할 것도 없다. 어두운 간접조명도, 삐걱거리는 나무바닥도 괜찮다. 여기는 마드리드다. 스페인이다. 난 이제 낯선 곳에 와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래도, 졸음은 참 익숙하다.  풀어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 눕는다.

이제 스페인이다.

스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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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페인으로 간 까닭은.
스페인 여행 | 2006/11/29 23:50

나와 둥이는 지난 10월 중순 스페인으로 떠났다. 이제 스페인에서의 경험과 생각들을 하나씩 쏟아내려고 한다.

그럼 왜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는지부터 얘기해야겠다.



이제 와서 떠올리려고 하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진짜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막연히 떠오르는 걸 정리하자면 몇 가지 있긴 하다.

우선 목적지가 스페인이 된 이유!


첫째, 둥이가 4년 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스페인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 보지는 못해서 아쉬웠기 때문이다.

둘째, 언젠가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보게 된 책이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책이었다. 바르셀로나에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셋쩨, 올 봄에 우연찮게 음반가게 아저씨에게 추천을 받은 CD의 타이틀이 SPAIN 이었다. 한 반 년동안 줄창 들었다. CD 꺼내 듣느라 SPAIN이란 말을 입에 자주 올리게 된 것도 이유라면 이유랄까.



뭐, 따지고 보니 별 거 없다. 목적지가 스페인이든 어디든 상관 없었을 거다. 아마 해외여행이란 걸 하게 된 이유가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재무적인 관점에서 그 시점에 둥이와 내가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과감히 인도펀드에 투자하는 쪽을 선택했어야 했다.(-_-;) 아니면 전세대란을 대비해서 전세금 올릴 준비를 착실히 했어야 했겠지.

하지만! 우리는 떠났다. 왜?

몇 가지 이유가 있으니 또 한 번 정리해볼까.


첫째, 둥이는 틈만 나면 해외로 여행 가고싶어 했다.

둘째, 4년 전의 유럽여행을 통해 둥이가 얻은 게 많았다. 둥이는 유럽이든 어디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게 삶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해외여행이라는 거 한 번 다녀올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이 때 아니면 언제 길게 여행 다녀오겠냐는 생각이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환갑이 다 돼서야 해외여행 갔다올 것 같은 위기감 같은 게 있었다.

넷째, 막연한 오기도 있었다. 나도 못 갈 거 없다는 생각과 이것 저것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못 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과감히, 그러니까 별 생각 없이 여행을 결정했다.

다섯째, 우리 둘이 여행 가면 무척 재미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집 구석에 콕 박혀있어도 깨가 쏟아지는데, 해외로 나가면 아예 참기름집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보인다.

둥이와 나 사이에 주고 받는 사랑과 믿음.

이거다.


넉넉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기가 느꼈던 경이로운 세상을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둥이의 마음 없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둥이와 같이 있으면 어디 가든 좋을 거라는 생각도 사랑 때문이었겠지.


부러운가? 부러워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의 러브러브 스페인 여행 얘기 한 번 들어 보시라.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 얘기와 함께 날카롭고 차갑고 때론 격렬하고 선동적인 얘기까지, 다채로운 글과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다. 목차는 엑셀로 산뜻하게 정리해뒀다. 글만 쓰면 된다.

이제 또니와 함께 하는 스페인 여행이 시작된다.


태그 : Spain, 스페인, 스페인 여행,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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