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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에 해당하는 글2 개
2007/12/26   [보고 싶다] (4)
2007/12/21   우리의 성공도 실패가 아닐까? (2)


[보고 싶다]
생활/연남동 | 2007/12/26 21:50
  밖에 나갔다가 들어왔는데도 현관에 바람이가 안 나와 있다.
  저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 할 바람이가 없다.
  슬며시 다가와 내 다리에 제 몸을 비비는 바람이가 없다.
  내 발냄새를 맡으며 침을 흘리는 바람이가 없다.
  책상에 올라와 밥을 달라며 보채는 바람이가 없다.

  지난 이틀 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한 바람이.
  지금은 동물병원에 입원해 있다.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수액은 바람이의 몸 속으로, 오줌은 바람이의 몸 밖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물과 영양소를 입이 아닌 혈관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요도를 통해 관을 넣어서 방광에서 직접 오줌을 빼내는 바람이가 불쌍하다.

  바람이는 내 품에 안겨서도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제를 맞고도 아파 신음했다.
  등에는 제 몸에서 빠진 털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억지로 방광에서 빼낸 탁한 오줌의 냄새가 진했지만, 잘못 흘러 바람이 몸에 뭍는 오줌이 신경쓰여 그 지독한 냄새가 역하지 않았다. 치료 중에 바람이를 잡으면서 부모님 생각을 했다. 부모님도 그러셨을 거다. 내가 어렸을 적 폐럼으로 입원했을 때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플라스틱 통에 오줌을 눠도 그 누런 액체의 냄새가 싫지 않았을 거다.
  탁한 오줌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독이 빠져나오는 거다. 바람이의 몸 속에서 독이 나오는 거다. 조금씩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줌을 보면서 그 독한 냄새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저 감사했다.
 
  혈액검사를 해 보니  신장에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정말 정말 다행이다. 방광염을 완전히 치료하려면 꽤 오랜 기간동안 신경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신장염의 경우 만성이면 더 이상 치료를 하기 힘들다고 한다. 까짓 거 한 달 간 방광 회복 프로그램 돌리는 거다!

  하루에 한 두 번씩 청소를 해도 언제나 발에 밟히던 고양이 화장실 모래. 그 모래가 밟히지 않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그 옅은 회색빛의 모래들이 발에 채이지 않으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방바닥이 깨끗하니 마음 속이 황량해진다. 오늘은 바람이가 화장실 모래를 파는 소리에 잠을 깨지 않고 곤히 잘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방해 받지 않는다는 게 꼭 좋은 게 아니구나. 언제까지나 바람이가 내 잠을 방해하면 좋을 것 같다. 바람이가 보고 싶다.

태그 : 그리움, 동물병원, 바람이, 방광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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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공도 실패가 아닐까?
소감/책 | 2007/12/21 22:12
향수 (양장)10점

  플라톤 식으로 세상을 보자면, 사람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너머의 이데아(관념, 이상, 법칙)의 그림자다.
  그림자만 바라보면서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힘든 사람들은 세상을 일련의 이미지 조각 모음으로 이해한다. 여기서의 이미지란 사람들이 나름대로 구성해낸 이데아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떠올리는 세상에 대한 이미지들 사이에도 모순이 생긴다. 우주의 원리 속에 담겨진 기계적인 법칙을 찬양하면서도 인간관계에서는 도덕라는 일종의 초월적인 목적을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모순일 것이다.

  이미지는 존재 자체를 체험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 이미지들이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할 수 없다. 이데아를 향한 여행은 지루하고 힘들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플라톤마저도 완벽한 사회, 즉 사회의 이데아인 유토피아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향수>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몸에 향수를 뿌리면서 '변신'한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사형집행장에서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향수는 사람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도구, 혹은 이미지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새로운 이미지는 옛 이미지에 덧씌워져 혼합되거나 낡은 이미지를 완전히 몰아낸다.)
  <향수>에서는 귀한 향수로 몸을 단장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바꾸는 이들은 이미지 구매자다. 값비싼 이미지의 구매자가 될 수 없는 가난한 이들도 나름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각자가 뿜는 체취가 그것이다. 냄새를 풍기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는 힘들다.

  체취 없는 이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 몸에서 나는 생선냄새로 생선장수라는 것을 짐작하듯, 체취는 삶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처럼 체취로 삶의 단면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체취와 삶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정한 규정에서, 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소외를 뜻할 수도 있다. 체취가 없었던 그르누이가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데 집착한 이유도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짐작케 하는 체취, 즉 사회가 인정하는 이미지가 없는 이에게도 사회는 어떤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것은 괴물이라는 이미지다.
 
  체취 없는 주인공은 향수(香水)에 지독한 향수(鄕愁)를 느낀다. 그는 아름다운 인간의 원형을 찾아내고 소유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자리 잡았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이런 내밀한 인간탐구와 재현의 과정의 목적은 향수 제조 자체가 된다. 그가 사형집행장에서 제 몸에 향수를 뿌리게 된 것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향수를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의 본능을 자극했던 체취의 정수(情髓)를 느끼고 나서 죽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향수를 맡은 사람들의 행동은 사회의 질서를 간단하게 벗어났다. 지극히 커다란 매력을 체험하는 순간 사람들은 광기의 세계, 혼돈의 세계, 원초적 본능의 세계, 제약 없는 환희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그르누이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 향수일 뿐임을 알려주고서 떠나갔다. 그가 재현한 것도 이미지일 뿐이다. 그는 이미지 수집가였다.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르누이도 세상을 떠나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곳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과 대면했지만 수확은 없었다. 대신 그는 매우 현실적인 방법을 찾았다. 이미지 더미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한 차선책은 최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초인이 아니라 뛰어난 기술자였다.
 
  초인이 될 수 없다고 이미지 속에서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날 둘러싼 것들이 이미지라는 것을 알고 존재 자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르누이가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지내며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다가 느꼈던 자유는 본질을 체험하면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단지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에서 나온 자유였다. 진짜 자유를 포기한 그는 더욱 더 철저히 소외되었다. 자기 스스로에게서도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면서도 이미지 만들기에만 온 신경을 쏟았던 그는 진정 불행했다.

  도달할 수 없어도 바라볼 수는 있다. 이미지 너머를 잊지 않으면 이미지 속에서 길을 찾기 쉬울 것이다. 게다가 삶의 본질을 체험했다는 이들의 증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프리모 레비는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면서도 단테의 <신곡> 중 한 구절을 기억하며 자유를 느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이야기하는 깨달은 자들이나 돈오(頓悟)의 경지에 이르렀던 불가의 고승들, 신의 존재를 느끼며 한없이 기뻐했던 기독교의 옛 성인들도 진정한 자유를 느꼈던 이들일 것이다.
  이들의 체험이 그르누이가 만든 최고의 향수를 맡은 대중들의 체험과 같은 수준의 신비체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 체험을 향한 여행이 가지는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스스로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그르누이의 잔상이 쓸쓸히 남는다. 필생의 노력을 기울인 향수제조에는 성공했지만, 그 노력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져가는 과정이었다.
http://www.blackisland.net/tb2007-12-21T13:12:290.31010

태그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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