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는 경복궁>
- 청와대에서는 옛 조선 왕들의 처소를 바라볼 수 있다. 조선의 왕과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많이 닮았다. 한 사람의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 게 정치다. -
<잎사귀, 줄기.>
- 가을 나무의 형태와 색깔이 VOGUE 지의 사진들보다 화려하다. -
<청와대 앞길은 경복궁 뒷길. 청와대도 관광지다.>
<둥이>
<청와대 진입로의 대치구도>
- 청와대 쪽에서 길을 바라보는 초소는 그렇다 쳐도 청와대를 바라보는 초소의 방향의 의미는 뭘까? 언뜻 보면 남북한의 공동경비구역을 보는 것 같다. 위험한 누군가의 출입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세워진 게 초소라면, 위험인물은 청와대 밖에만이 아니라 안에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사람들,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
<칼국수보다 만두가 맛있는 어느 칼국수집 고양이>
- 추운 날 길에서 부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고양이. 사람이 다가가니 따뜻한 품으로 파고든다.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안기는데,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걸음을 떼기 어렵다. 이 친구 때문에라도 칼국수집에 또 가게 될 것 같다. -
이모 댁에 가는 김에 또 경복궁에 놀러 가려 했지만, 시간이 많이 늦고 날씨가 쌀쌀해서 그냥 경복궁 주위를 휘 둘러보기로 한다. 궁의 북쪽으로 가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그 쪽으로 가지 못한다. 몇 십 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 사복경찰들 때문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어도 왠지 경찰 근처에 가고 싶지는 않다. 경찰과 얘기해서 기분 좋았던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서 경복궁 정문이 있는 남쪽을 향해 걸어가다 문득 이럴 게 아니다 싶어 길의 북쪽에 있는 경찰에게 길을 묻는다. 경복궁 바깥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맞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경찰관은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경복궁의 담은 낮지 않다. 담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서 오른쪽을 봐도 경복궁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담장 건너편으로 눈길을 뻗어봐야 지붕 끝자락과 나무 윗둥만 겨우 볼 수 있다. 반면 정면에 있는 넓은 로터리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사복경찰인 것 같은 사람들이 어두운 옷을 입고 드문드문 서 있다. 겨우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복궁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지난번 경복궁 나들이 때 느꼈던 고즈넉함은 어디에도 없고, 무거우리만치 차분한 공기가 흐른다. 행정부의 장이 일을 하는 곳 앞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아직도 청와대를 생각할 때 안기부(지금은 국정원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와 취조실이 떠오르곤 한다. 그나마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들의 낯선 말소리에서 가벼움을 찾는다. 청와대 앞길도 관광지구나. 하긴, 경복궁도 한때는 살벌한 정치의 장이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청와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가볍거나 무거운 말들을 떠올린다. 그 말들이 뿜어내는 가볍거나 무거운 효과들을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는 없다. 사방팔방 적이 없다는 절대무적의 경지에 오른 개인을 찾기도 힘들 것이려니와, 이익집단의 충돌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와 행정의 장에서 적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나에게 적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군자나 투사가 될 수도 있겠지. 정치적 성향을 강요받는 것이 싫은 만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정치적 결단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도, 기본이 된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저마다의 ‘기본’이 다른 게 문제일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 행정의 기본은 이렇다. 적어도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기득권층이 가진 권력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재평가하는 것이다. 강요하거나 조작하고 선동하지 않고 설득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유권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역할이 중요할 거다. 투표 한 방으로 끝낼 일도 아니다. 평소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론의 생산을 대형 미디어 자본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PD수첩도 시사2580도 정작 PD와 기자와 미디어 사주들의 폭력에는 입을 다문다. 조직이 커지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권력의 맛을 보는 순간, 먹고 사는 문제가 끼어드는 순간 인간의 영혼은 자유로워지기 힘들다. 정치인과 언론인 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들에게 강요해봐야 나올 게 없다. 할 수 있는 이들이 조금씩이라도 해 내야 할 문제다. 지금 내 글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효과야 미미하겠지만, 괜찮다. 효과를 따지다보니 조직에 의존하게 되고, 힘을 가진 조직은 부패하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뒷통수에서 멀어지면서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다시 눈앞에 펼쳐진 고층빌딩 무리와 자동차들은 부담스럽지만, 오래 봐와서 익숙하다. 배가 고파 칼국수집에 만두를 먹으러 간다. 만두요리를 잘 하는 칼국수집이다. 청와대가 그저 민주행정의 장이 아니듯, 간판은 중요하지 않다. 나한테는 칼국수집이라기보다 만두집이다. 가로수가 아름답지만 무거운 기운이 깔린 청와대 앞길을 걸었다. 매연 때문인지 가슴이 더 답답하다. 칼국수집 고양이를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다정한 녀석이다. 오랫동안 친구 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한 5분 정도 곁에 있다 집으로 향한다. 또 보자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렇게 한 번씩 나들이 하는 게 좋구나. 다음에는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청와대 앞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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