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 축구대표팀이 시리아 대표팀과 원정경기를 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시들해진 데다가 TV를 보지 않은지도 꽤 오래된 터라 경기 중계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후 시리아전 경기가 한 케이블TV스포츠 채널에서 독점중계가 됐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영국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출장하는 국제적 수준의 스포츠경기'들을 '특별 이벤트 목록’으로 정해 국민들의 ‘볼 권리’를 보장했다.>라는 부분이었다. 영국 의회는 스포츠가국민통합에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스포츠는 사회통합의 중요한 수단이다. 1986년과 1988년에 그랬던 것처럼, 2002년에도 많은 한국인들은‘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온 몸으로 느꼈다. 너와 나는 사라지고 대한민국 국민만이 남아있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로 구성된사회는 마치 한 몸인 것 같았다. 에반게리온 마지막 회에 나오는 거대한 레이처럼.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통합이었다. 호사가들은 ‘W세대’라는 말을 쓰며 새 시대의 가능성을 찾느라 바빴다. 세대(世代)라는 말을 쓰기가 머쓱할 정도로 연령은 물론 다른 사회경제적 배경을 초월한 감성연대였다.
축구는 참 재미있는 스포츠다.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는 최고의 흥분제다. 나도독일 월드컵에서 박지성과 김남일의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선수들과 축구공의 움직임이 뿜는 열정과 짜릿함이 아닌, 쌩뚱맞은곳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는 차분히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에너지가 큰 만큼 주의해야 할 거다. 4년 전 월드컵의 열기로 봐서는 올 해 월드컵도 한국사회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어떤 수준의통합인지와 그 지속성을 따져보면 통합이라는 말이 쑥쓰러워질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몇 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달뜬 얼굴로자신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대한민국이 어떤 대한민국인가이다. 축구 경기로 사회의 통합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에 불쑥 얼굴을 내미는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다. 아마 천박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또 한 번 떠오를 것이다. 통합이 구성원간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면, 이 열풍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겨우 한반도 안에서만 허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동시에 민족과 국가가 강조되면서 타민족과 타국가에대한 이질감도 심해질 것이다. 국가 정체성, 민족 정체성은 보통 다른 국가나 민족과 비교하며 생기기 때문이다.
통합의 에너지가 굉장하다면 이 에너지로 사회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싹터 갈등이 줄어들었으면면 좋겠다. 정신 없는 와중에 끼어드는 것들을 걸러내면서. 괜히 또다른 정몽준이 나타나거나 사람들이 실없이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무슨 세대의특징이라며 떠들어대면서 상상력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월드컵 때문에 부조리한 일들이 묻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일이겠지. 대한민국을 울궈먹는 일,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축구는 재미있고, 주위의 떨거지들은 짜증난다. |